미선과 헤어진 남자친구 민재는 주위사람들에게 돈을 빌린 후 잠적해 버린다. 휴대폰이 꺼져 있는 시간이 길어 연락이 잘되지는 않지만 민재는 가끔씩 미선에게 연락하여 안부를 묻곤 한다. 아마도 민재에게 돈을 빌려준 지인들이 어떤 신고는 하지 않는지 궁금하기도 해서일 거라 미선은 짐작한다. 민재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도 그의 소식을 묻기 위해 미선에게 연락하기도 한는데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듯하다.
호두는 민재를 걱정한다 그리고 포기한다
민재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민재에게 신세를 진적이 있다. 15만원을 빌려준 친구는 민재의 자취방에 거의 반년을 얹혀살기도 했고, 호두는 민재로부터 소개받은 게임회사에 취직하여 나름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도 하다. 호두를 제외하고 민재가 사람들에게 빌린 금액은 15만원에서 100만원 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액수이고, 민재에게 진 신세 때문인지 평소의 사람됨 때문인지 아직까지 민재는 그들에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고 아직까지 민재를 신고한 사람은 없다.
민재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 중 가장 큰 금액을 빌려준 사람은 호두(영호)이다. 호두는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그의 사촌인 미선의 집에 맡겨지고 미선의 집에서 함께 살아왔다. 미선의 고모는 보험회사에 근무하면서 호두를 맡기는 대신 그에 상당하는 비용을 미선의 집에 지불하였고,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남겨놓은 보험금으로 남아있는 유산도 미선의 아버지가 보관하고 있다. 이렇게 호두는 미선의 집에 크게 신세를 지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호두의 나이도 이제 스물아홉으로 독립을 해야 할 때가 되기도 하여, 미선의 집을 나와서 살아갈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보증금으로 2천만원을 모아두었다.
민재와 미선은 서로 사귀는 사이였고, 호두는 미선으로 인해 민재를 알게 된다. 호두는 함께 자라온 사촌지간인 미선을 믿고 그동안 보증금으로 쓰려고 모아둔 2천만원을 민재에게 빌려준다.
민재와 미선은 소소한 성격차이로 인해 헤어질 결심을 한다. 민재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참지 못하지만 미선은 머리카락을 많이 흘리고, 미선은 설거지를 먼저 처리해야 하지만 민재는 설거지거리를 많이 만들어 놓는다. 이러저러한 소소한 불만들이 모여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쌓이게 되고, 미선은 민재와 헤어지겠다는 결정을 한다. 서로 바쁜 일이 생겼고 정신없는 일들이 끝난 다음 미선은 민재에게 이별통보를 한다. 그렇게 이별통보를 미루는 사이에 호두는 민재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민재가 사라진 후에 호두에게 민재와의 이별한 사실을 알렸다. 그러면서 미선은 호두가 민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미선은 어쩔 수 없이 호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호두와 함께 민재를 찾는 일에 동참한다.
미선은 민재에게 고동이라는 곳에 있다는 전화를 받고 호두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다. 호두는 고동이라는 지역의 마을회관마다 전화를 걸어 민재를 수소문하다가 민재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그 이후 지정한 날짜 또는 조금 늦더라도 민재는 호두에게 빌려간 돈을 조금씩 갚아간다. 민재의 입금은 민재의 안부를 알리는 안부인사 같은것이 되었고, 호두는 민재가 돈을 다 갚고나면 더 이상 민재의 안부를 알 수 없을까봐 오히려 걱정한다.
하지만 민재의 안부인사는 완납되기 전에 끝이 난다. 민재로 부터 어떤 통보도 없었으니 그 이유나 사정은 알수 없다. 호두는 이번에는 좀 늦으려니 생각하다가 두세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배신당한 기분으로 포기해 버린다.
평범한 삶이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다
민재는 미선에게 '나중으로 미루는 버릇 때문에 될 일도 안 될 것이고, 그로 인해 평범하게 사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평범하게 사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그 의미가 많이 달라진다. 과거의 미선에게 평범한 삶은 잘 갖추어진 충족된 삶이었고, 민재에게 있어 평범한 삶은 불운이 함께하는 삶이었다. 그러니까 민재가 미선에게 한말은 저주가 섞인 말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삶이 불운과 함께 한다는 삶이라는 것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워진다.
뜬금없는 생각
나도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30평대 아파트에 기름값 걱정 없이 몰 수 있는 자동차, 아이들 교육시키는데 크게 부족하지 않는 삶을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당연히 SKY에 갈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진 않은 철없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그때가 그리워지는 것은 어쩌면 이루어 낼 수도 있는 미래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평범하게 사는 것은 불운과 함께 하는 것보다는 행운과 함께 하는 것이었으면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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