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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소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by 즐하 2022. 12. 29.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상고에 다니는 고등학생인 나는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한 탓에 방학에는 일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힘들어도 성실하게 일을 하지만  돈을 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코치형은 상대적으로 시급이 괜찮은 지하철 푸시맨 알바를 나에게 소개해 주었고 나는 그 일을 시작하게 된다. 

지하철역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지하철을 타려는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버지를 지하철 안으로 밀어 넣는다. 나는 종종 이렇게 아버지를 지하철로 밀어 넣는다. 그러던 어느 날 유달리 지쳐 보이는 아버지를 보았고, 종종 그랬듯이 지하철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사라져 버린다.

새벽에 이를 하던 나는 잠시 역사 벤치에 앉아 졸다가 기린을 보게 된다. 나는 기린을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아버지가 맞는지 물어본다. 그는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일상의 반복

아주 오래전에 매일 같은 일과를 반복하는 10대 학생들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성장다큐를 본 기억이 있다. 나도 그때 10대 시절이었는데 너무 공감이 가는 내용이라 아직도 마지막 엔딩에 깔렸던 노래가사를 기억한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그 길을 달려와. 또 다른 세상이 있진 않을까?"

그때는 학생들만 그런 줄로만 알았고, 학교만 졸업하고 나면 매일 반복적이고 의미 없는 듯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상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정해진 구간과 속도로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지하철은 우리의 현실과 많이 닮아 있는 듯하다.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는 삶이 되는 때가 곧 반복적인 일상을 벗어나는 때가 아닌가 싶다. 

 

기린이 된 아버지

목이 길어 슬픈 동물이라는 기린은 목이 길어서라기보다는 눈이 슬퍼 보여서 그렇게 불리는 것 같다. 초식동물인 기린은 자기를 위해 살아있는 생명을 해하지 않는다. 때론 사자와 같은 육식동물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는 그런 기린이 되었다. 아버지에게는 인생의 짐 일수도 있는 자식이 지하철이라는 현실 속으로 강제로 밀어 넣었고, 그 아버지는 기린이 되었다.

누구나 잘 먹고 잘살기 위해 현실 속에서 경쟁하며 버티며 살아간다. 사람뿐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누구 하나 쉽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태어나서 죽어가는 과정이라면, 그냥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 살아있는다는 건 존재하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존재의 이유는 있으니깐 말이다. 

 

등장인물과 사건이 의미하는 것

▷ 나(화자) : 돈을 벌기 위해 힘들어도 성실하게 일을 하는 사람. 어머니가 쓰러졌을 때도 돈 생각부터 하는 수를 따지며 계산적으로 사는 인물.
아버지 : 평범한 회사에 다니며 어머니와 자식을 부양하는 가장. 실종된 아버지는 삶에 대해 벗어나고자 하며 회피하는 인물.  
코치 형 : 화자에게 알바를 소개해주는 의리 있는 인물.
기린 : 목이 긴 초식동물로 세상을 내려다보며 무한 반복되는 자본주의적 일상을 성찰한다.
아버지의 실종 :  자본주의적 일상에 대한 거부
지하철 : 반복되는 자본주의적 일상
산수 : 자본주의의 계산적이고 냉혹한 사회상

기린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 : 자본주의적인 반복되고 상습적인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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