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을 해온 희진은 다른 남자를 마음에 두게 되어, 남편인 수홍과의 별거를 위해 집을 나와 혼자 원룸으로 이사를 한다. 그 사람과의 연애를 위해 집을 나왔지만 계획처럼 되지는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 남편 수홍은 그런 그녀를 묵묵히 지켜봐 준다. 그런 그들과의 관계와 상징하는 여러 요소들을 통해 희진의 변화하는 마음을 연관 지어 보여준다.
도넛, 아이스크림 그리고 아버지의 다른 여자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11년간의 결혼생활을 벗어나 이사를 오던 날 아버지는 도넛 한 상자를 들고 집으로 온다. 당뇨가 있는 아버지는 도넛을 먹으면 안 되지만, 조금은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녀는 아버지에게 도넛 한 조각을 잘라 건넨다. 포크를 손으로 받아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버지는 입을 벌리고, 그녀는 아버지의 입안으로 도넛을 넣어준다.
일상을 지내던 어느 금요일 밤 퇴근 무렵 아버지는 주식단타로 50만 원을 벌었다며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는 전화를 한다. 아버지와 함께 한우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와, 아버지가 사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들고 집으로 왔다.
좋아하지도 않는 소고기를 먹고 더부룩하여 소화제를 사러 편의점에 나왔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사람들이 뛰기 시작하고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그녀도 사람들을 따라 뛰기 시작한다. 잠깐이지만 뛰어본지가 오래된지라 숨이 찼다. 하지만 그게 좋다.
집으로 돌아와 연락하지 않기로 했지만 망설이는 마음으로 그 사람에게 이사한 원룸의 주소를 문자로 보낸다. 그리고는 다시 집을 나와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켜보지만 그 사람의 회신은 없고, 집에 잘 들어갔냐는 아버지의 문자만 있다.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술을 마신다.
고1 때 아버지가 어머니가 아닌 다른 젊은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다만 옆에 서서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날 아버지는 자정이 넘어 들어왔고 나는 그 두 사람이 평범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개구리와 지렁이, 장마철과 겨울, 드라이아이스와 상처
술에 취해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수형은 땡볕에서 개구리를 찾고 있고 그걸 도우려고 일어서는데 현기증에 잠이 깬다. 잠에서 깨니 숙취로 인한 두통과 갈증이 그녀를 괴롭힌다. 함께 있었으면 물과 두통약을 가져다주었을 수형이 생각난다. 차가운 게 먹고 싶어 얼음을 찾으려고 냉동실 문을 열지만, 얼음은 없고 아버지가 사준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있어 머리가 찌릿함을 느끼며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퍼먹었다.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는 드라이아이스가 든 종이봉지를 손으로 꼭 쥐었다. 잠시 서늘하게 차갑다가 따끔해지는데 좀 더 참고 있다가 너무 아파 상자 속에서 손을 뺐지만 드라이아이스 봉지가 손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손을 물에 담가 봉지는 떼어내긴 했지만, 손바닥에는 물집이 잡히고 너무 아팠다. 다음날 근처의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치료해 준다.
밤이 되면 달리기를 하러 나간다. 달리기를 시작한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내게 맞는 러닝화를 사가지고 와서는 좋은 코스가 있다며 함께 하자고 한다. 아버지는 잘 달렸고 나는 아버지를 방해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아버지와 함께 천천히 산책로를 걸어 내려왔다.
가을장마로 비가 내린 산책로 위에 땅속에서 기어 나온 지렁이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멍청하게 땅속을 나와 죽어가는 지렁이를 보면 속상하다고 하자, 아버지는 그녀가 어릴 때 소금을 뿌리면 난리 치며 죽어가는 모습이 재밌다며 소금을 뿌려서 직접 지렁이는 죽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애가 너무 잔인한 것 같아 걱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고 혼자밥을 먹다가 그 사람 생각이 났지만 수형에게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문자를 보내고 밖으로 나가 차가운 바깥공기를 느끼며 달리기를 시작한다. 차가운 겨울에는 비나 눈이 내린 다음날에도 지렁이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수형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그녀의 집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수형은 어색함 없이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와 자연스럽게 아이스크림 포장을 풀어 식탁에 세팅한다. 수형은 아이스크림을 떠서 스푼을 그녀에게 건넨다. 스푼을 받으려다 입을 벌린다. 이사 온 첫날 아버지가 도넛 한 조각을 그녀에게 입을 벌려 받아먹은 것처럼.
복잡하게 연관 지어지는 요소들의 흥미로운 이야기
비가 내린 다음날이라도 추운 겨울날에는 보이지 않지만 장마철에는 땅속에서 기어 나오는 어리석은 지렁이는 희진의 마음을 나타내는듯하고, 꿈속에서 지렁이의 천적인 개구리를 찾는 수형의 행동은 그녀의 마음을 잡아보려는 노력인 듯하다. 잠시의 시원함을 위해 오래도록 잡고 있으면 아픔을 주는 드라이아이스는 그 남자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생긴 흉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희미해 그 남자의 흔적인 듯도 하다.
폐가 아플 때까지 달리며 느끼는 그녀의 쾌감은 아픔을 이겨낸 후에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아버지와 젊은 여자, 아버지와 함께 입속으로 들어가는 도넛과 수형과 입속으로 들어가는 아이스크림, 어머니가 선물하는 검은 레이스 달린 속옷 등 다양한 요소들이 연결되어지는 것이 너무 복잡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흥미로움을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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