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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소설」 중국식 룰렛

by 즐하 2023. 1. 1.

어느 날 밤 나는 자신의 술집에 꼭 들러 달라는 k의 연락을 받고, 그의 술집으로 향한다. 도착해보니 그 안에는 아르마니 청년과 검은 안경테의 중년남자가 손님으로 남아 있다. 그날 밤 복불복 게임과 같은 이 가게의 주문방식에서 가장 좋은 술(무려 72년 산 글렌리벳 셀러 컬렉션)을 선택한 두 사람 이라며, k는 나에게 그 두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자고 제안한다.


게임의 룰

어느덧 두 번째 빈 병이 나왔을 때, K는 새 술을 내오겠다고 하며, 게임을 제안한다. 게임의 방식은 한 사람이 질문을 던지면 지적받은 사람은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하고 나서 술을 한 잔 마시는 것이다. 다만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나면 곧바로 게임에서 빠져야 하고, 대답을 못 하면 술을 마실 수 없다.


게임의 참가자들

나 : 16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이혼을 앞두고 있을 뿐 아니라 의료사고를 주장하는 환자 가족들과 합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사이다. 꼭 들러 달라는 K의 연락을 받고 그의 술집으로 향한다.
  
k : 진실게임을 하는 장소인 위스키바의 주인이자 바텐더이다. 각기 다른 술로 반쯤 채워진 술잔 세 개를 손님에게 가져다주면, 손님은 세 종류의 술을 맛본 후 한 가지를 골라 주문하게 한다. 세 가지 술의 실재 가격은 고만고만하지 않지만 뭘 선택하여 주문하던지 가격은 동일하다. 주문 이후에도 선택한 술의 가격, 이름 등을 알려주지 않는다.

검은 안경테의 중년 남자 :  시종일관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고 얼마나 운 없는 사람인지를 강조한다. 선배에게 집을 담보로 보증을 서주었는데 선배는 사기꾼이었고, 공장에 빚을 내어 자재를 들여놓았는데 화재가 발생했고, 의사가 건강하다고 해서 낳은 아이는 죽어서 태어났고, 군에 입대하면서 친구에게 부탁한 여자친구는 그 친구와 연인사이가 되어있었다. 느리고 기운이 없으며, 불안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습관적으로 한숨을 쉬긴 하지만 행운을 기다리는 인물이다.

아르마니 청년 : 아르마니 양복과 에르메스 넥타이를 한 그는 겉모습이 멀끔한 청년이다. 잔을 쥐는 방법에서부터 위스키에 관련된 이야기를 떠벌리며 아는 척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k가 자신의 위스키와 관련한 지식에 대해 지적을 하면 퉁명스럽게 대답을 한다. 자기의 말에 토를 달거나 지적하는 행동을 매우 싫어하는 인물인듯하다.  직업은 홍보회사 인턴사원이고, 습관적으로 손장난을 친다.


행운과 불행의 경계와 차이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불운하거나 불행한 처지에 대해 털어놓는다. 털어놓는 이야기로 보면 취한 네 사람은 분명 운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단지 조금 불행한 것처럼, 그래서 단지 약간의 행운이 필요한 것처럼 조금 운이 없을 뿐이라고 여긴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그저 조금 운이 없는 정도에 불과한 것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은 그날 술집에서 가장 비싼 술을 고른 운 좋은 사람들이었다.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정말 조금의 행운만이 사라진 불행한 일보다 행운이 더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행운과 불행의 경계와 차이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해보게 한다.


k의 술집에서는 매일 밤 행운과 불행이 발생하는 셈이었다.
사람의 인생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증발되는 게 있다면, 천사가 가져가는 2퍼센트 정도의 행운 아닐까요. 그 2퍼센트의 증발 때문에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군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단지 조금 불행한 것처럼, 그래서 단지 약간의 행운이 더 필요할 뿐인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불운의 총량은 어차피 수정될 수 없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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