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당사자인 외할머니에게는 첫번째 결혼을 실패하게 하였고, 엄마에게는 가족으로부터 버려지게 하였고, 나에게는 아버지로부터 폭행당하는 엄마를 보는 상처를 갖게 하였다. 이에 외할머니가 사회의 편견에 맞서 싸운 보상의 대가는 세사람이 받은 상처를 서로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외할머니와 엄마의 갈등
외할머니는 한센병력을 가지고 있다. 시집을 가서 딸아이도 있었지만 한센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전남편은 알고 혼자 나가서 죽으라며 독약을 건넨다. 그렇게 딸을 두고 집에서 쫓겨난 외할머니는 한센인 수용소가 있던 섬으로 갔고, 그곳에서 외할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단종수술을 피해 자식을 얻은 그들은 섬을 빠져나와 한센인 격리촌인 협동농장에 들어가는데, 엄마는 고아원으로 보내고 외숙부만 데리고 들어간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악착같이 돈을 벌었고, 10년 만에 협동농장을 벗어나 서울로 이사를 한다. 이사를 하면서 고아원에 보냈던 엄마를 다시 데려오고, 외할아버지의 가전제품 대리점 사업도 번창하여 엄마는 남부럽지 않은 십 대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엄마는 자기를 고아원에 버리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외할머니를 용서하지 못한다.
사업에 실패하고 술에 절어사는 아버지는 외가의 한센병력을 재수 없어하며 엄마를 폭행하였고 이에 시달리던 엄마는 나를 데리고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때 우리를 마주한 외할머니는 아버지에게로 다시 돌아가라며 외면했었다. 나는 매몰차게 외면하는 외할머니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고, 외할머니와 엄마는 서로 독한말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화해와 싸움을 거듭하는 깊은 애증의 관계를 유지해 갔다.
편견에 맞서 얻은 보상금
외가에는 네 식구를 살아가게 해 준 협동농장의 땅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협동농장의 대표는 그 땅을 헐값으로 모기업에 넘기는 과정에서 뒷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게 되고, 땅을 잃은 한센인들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한 법정소송과 집회를 시작한다. 동네에서 가장 큰 약국을 운영하기도 하는 외숙부는 외할머니의 병력을 감추고 싶어 했고, 외할머니의 병력이 알려지기 기라도 하는 날에는 약국이 망할 수도 있다며 외할머니가 집회나 소송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었다.
외할머니도 그것에 동의하는 듯하였으나 실제로 외할머니는 한센인 연합회의 적극적인 일원이었으며, 집회와 소송에 열성적으로 참여했으며, 기나긴 소송 끝에 보상금을 받아 연금에 가입하였다.
보상금의 보상
나와 인철은 동거 중이다. 인철은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기로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워낙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생활인 데다가 벌이도 변변치 않아 다투는 일이 잦아진다. 그러던 중 나는 자궁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하게 되고, 병실에 찾아온 엄마는 버젓이 살아계신 외할머니가 남기 유산이라며 오백만 원 정도가 든 봉투를 전해주며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매월 나오는 연금이라고 한다. 노력 없이 받는 대가이기에 부담스럽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은 그 돈을 사양할 수 없다.
한센병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시절 오해와 편견 속에서 한센인으로 살아온 외할머니의 희생과 고초를 통해 얻은 보상으로 인해 혜택을 받은 우리는 나름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고, 매월 입금이 되는 날이면 할머니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리고 인철의 제안으로 네 사람은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나고, 그 후 나와 인철사이에는 딸이 생기고 딸의 돌잔치에 다시 모인 네 사람의 관계는 점점 나아져 간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딸이 두 돌을 맞을 무렵 돌아가신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병원에서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전 남편에게 쫓겨나면서 두고 온 딸 해원을 만나게 해 주었고, 외할머니와 엄마의 깊은 애증의 관계도 마무리 된다.
한센병에 관한 나의 기억
의료인의 직업을 가졌던 조금은 남달랐던 친구 하나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소록도에 가서 살겠다고 했을 때, 헛소리 말고 부모님 한 테나 잘하고 살라면서 나무란 적이 있었다. 내가 한 말 때문에 그곳에 가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는 소록도에는 가지 않았고, 사고로 인해 지금은 이 세상에는 없는 존재가 되었다. 가끔 그 친구가 떠오를 때면 만약 그때 그가 소록도로 갔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한센병력을 드러내고 잘못된 사회적 편견에 맞서 이겨낸 할머니에게 응원과 용기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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