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는 작가 최서해가 신경향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자리매김하게 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작가의 자전적 내용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박군의 가족을 걱정하는 김 군이 박군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을 그대로 작품에 담아냄으로써 독자가 마치 그의 편지를 직접 읽는 듯한 사실주의적 경험을 하게 해 준다.
박군의 답장
나는 절박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 희망을 품고 고향을 떠나 새로운 동경의 세계인 간도로 떠났다.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고향을 떠알때는 농사를 지어 배불리 지내고, 무지한 농민을 가르쳐 이상촌은 만들어 보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간도에 들어선지 한 달이 못 되어 내가 품었던 그 이상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생소한 산천에는 의논할 만한 사람도 없고, 농사를 지으려고 밭을 구하였으나, 밭은 커녕 일자리도 얻지 못한다. 어름어름하는 새 한 달이 넘어가고 몇 푼 되지도 않는 돈마저 다 잃는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겠기에 항시 숯검정의 의복차림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들장 고치는 일을 하러 다닌다. 그나마 구들 고치는 일도 항상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강가의 부스러진 나뭇개비를 주워 연명하게 된다.
늙은 어머니와 아내가 배를 주리고 멸시받는 모습을 보는것은 뼈가 부서지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했다. 하지만 빈곤은 날로 심해져 가고 이틀 사흘 굶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날은 일자리를 찾다가 집에 들어가 보니 임신을 하여 배가 남산만 한 아내가 무엇을 먹다 깜짝 놀라 손에 쥐었던 것을 아궁이 속으로 던진다. 이틀을 굶고 있던 나는 아내가 혼자만 무언가를 먹는다며 의심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에 아내가 먹던 것을 찾으려 아궁이를 뒤진다. 그 속엔 베어 먹은 잇자국이 선명한 귤껍질이 있었다. 버려진 귤껍질을 주워 먹은 아내에 대한 미암함과 그런 아내에게 불평을 품은 자신이 부끄러워 눈물을 흘리고, 이를 본 아내마저도 내 곁에와 눈물을 떨어뜨린다.
여름이 지나 서리가 내리는 찬기운은 우리를 위협하였고, 나는 대구어 열마리를 사서 산골로 가져가 바꾼 콩 열 말을 자본 삼아 두부장사를 시작하였다.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내와 나는 무거운 맷돌질을 하였고 무거운 맷돌을 돌리고 나면 팔이 떨어져 나갈 듯 괴로웠다. 이렇게 애써 만든 두부는 곧잘 쉬기도 하고, 그런 날이면 집안은 비통해지고 쉰 두붓물로 끼니를 채운다. 또한 어렵사리 완성된 두부는 내다 팔아봐야 얼마 남는 것도 없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두부를 하는 것 외에 달리 방안이 없다.
두부을 만들려면 땔나무가 필요한데 이를 구하려고 주인 몰래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오기도 하였다. 그리하다가 들키기도 하여 중국경찰서까지 가서 여러 번 맞기도 하였다. 그 후론 내가 한일이 아닐지라도 산 주인이 나무를 잃고 고발을 하는날이면 항상 우리 집부터 수색하고 나를 때리지만 호소할 곳이 없다.
추운 겨울이 닥치고 여태까지 충실히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식구가 굶고 있는 모습을 본다는 것을 더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생의 만족을 느낄 수 없는 이 제도를 그저 둘 수 없었고, 이것을 쳐부수워야 하기에 집을 탈출하여 나는 XX단에 가입하였다.
나의 식구가 힘들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지만 어떠한 고통도 참고 분투하려 한다. 민중의 의무를 이행하는 까닭에 성공 없이 죽는다 한들 원한이 없다.
박군이 선택한 XX단
박군은 도저히 개인의 힘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써 민중운동을 선택한다. 당시의 박군과 그의 가족이 함께 겪은 힘들고 처절한 생활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가족을 외면하는 박군의 선택마저도 공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XX단의 정체는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박군이 바라는 '노력하는 자에게는 생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공정한 세상'을 꼭 만들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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